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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關東誌 上

저자명

-

간행서

강원도

소장기관/
소장자

-

출판사

도서출판 산책

간행년도

2007

언어

한국어

총서사항

-

형태

도서

키워드
멀티미디어

https://www.youtube.com/watch?v=o-DsHEheT04

내서재 담기 인용하기
  • 1. 이 책은 1830년경에 발간된 『관동지(關東誌)』의 번역문과 원문이다.
    2.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고서를 원본으로 하며, 1990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한 『강원도읍지(江原道邑誌)』를 모본으로 번역하였다.
    3. 이 책의 편집은 『관동지(關東誌)』 원본의 편집을 대체로 준수하되 원문상 大字·小字 서술, 항목의 구분 등은 독자의 편의를 위해 ‘ : ’ ,  ‘(  )’ 등의 표시로 구분하여 편집하였다.(原文 편집도 동일)
    4. 목차는 원문목차와 세부목차로 나누었다. 원문목차는 『관동지(關東誌)』 원본의 목차이며, 세부목차는 찾아보기 쉽도록 다시 편집한 목차이다. 별도의 찾아보기는 그 양이 너무 많아서 만들지 않았다.
    5. 원문목차와 세부목차에는 편의상 일련번호를 붙였다.
    6. 번역은 직역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시 및 기문 부분에는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의역된 부분도 있다.
    7. 시문은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싣고, 번역문에 주석을 붙였다.
    8. 각권의 주석은 역주자 및 교열자가 처리했다.
    9. 번역문의 문장은 한글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인명 및 어려운 용어는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에 따라 (  )안에 한자를 병기했다.
    10. 탈자(脫字)는 □로 표시하고 같은 쪽에 각주로 처리했다.
    11. 이 책에 나오는 부호는 일반적인 부호여서 특별한 설명을 가하지 않는다.
    12. 원문에 대한 교열 및 교정은 『관동지(關東誌)』의 표기대로 하였다.
    13. 연대표기의 경우 서기 연대표기를 원칙으로 하되 묘호, 연호를 함께 써야하는 경우는 (  )안에 표기하였으며, 문장의 내용상 묘호나 연호는 그대로 본문에 쓰는 것이 좋은 경우는 (  )안에 서기연대를 표기하였다.
    14. 번역문을 상 하 두권으로 싣고 원문을 별책으로 하여 총 3권 1질로 구성하였다.
  • 이 책은 19세기 초반 강원도의 각 부(府)․목(牧)․군(郡)․현(縣)의 읍지(邑誌)를 모아 편찬한 『관동지(關東誌)』를 번역하고 주석(註釋)을 붙인 역주서(譯註書)로, 강원도의 의뢰로 본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고문서연구센터에서 2년 가까운 기간동안 역주작업을 수행하여 발간하게 된 것이다.
    지리지는 대개 예로부터 통치의 기본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이에 따라 각 고을의 경계와 산천을 정하고, 물산(物産)을 낱낱이 들어 공부(貢賦)를 명백히 기록하였으며,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의 할 바를 가르치기 위하여 역사를 쓰는 사관을 시켜 지리지를 만들게 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상서(尙書)』의 우공편(禹貢篇)은 최고의 지지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지지(地誌)는 한나라 초기에 이르러 호구(戶口) 등의 항목을 더하게 되고, 후한(後漢) 때에 와서는 풍속까지 넣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국유사』에 ‘백제 지리지’라고 운운한 것이나 『삼국사기』에서 ‘당 태종에게 봉역도(封域圖)’를 바쳤다는 것 등에서 볼 때 이미 삼국시대부터 지리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각종 지리서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선종 때, 송나라에서 고려에 간청한 도서목록을 보면 그 중에는 원래 중국에서 편찬된 『여지지(輿地志)』와 『괄지지(括地志)』 같은 지리서가 들어 있고, 그 밖에 『고려풍속기(高麗風俗記)』(1권), 『고려지(高麗志)』(7권)도 들어 있다. 이로 보아 『고려풍속기』와 『고려지』는 고려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나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삼국사기』의 지리지가 남아있을 뿐이다. 『삼국사기』의 지리지는 매우 소략하여 각 고을의 간략한 위치와 연혁을 기재하는 정도였으며, 이는 조선시대에 와서 편찬한 『고려사』 지(志)의 지리(地理)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전기(前期)에 『지리비록촬요(地理秘錄撮要)』를 비롯하여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많은 지리지가 편찬되었고, 후기(後期)에는 한백겸이 저술한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를 비롯한 이식(李植)의 『북관지(北關誌)』, 홍양호(洪良浩)의 『북새기략(北塞記略)』,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그리고 각종 읍지(邑誌)가 편찬되었다.
    『관동지』는 그 편찬시기가 정확하게 명시된 읍지가 없기 때문에 제작 시기를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으나 1871년 편찬된 『관동읍지』 ‘선생안(先生案)’조에 수령(守令)의 도이임(到離任) 연월(年月)이 기록된 읍지가 14개가 되는데, 이것을 『관동지』의 해당 읍지 ‘선생안’과 비교하면, 『관동지』의 편찬시기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보면 『관동지』는 대개 1822년∼1826년 사이에 각 읍에서 읍지를 만들어 감영으로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며, 강릉과 같이 늦은 경우는 1829년∼1831년 사이에 제작하여 감영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관동지』 권1의 「감영지(監營誌)」의 ‘방백제명록(方伯題名錄)’조의 마지막 인물 이기연(李紀淵)의 재직기간 기록에 “무자년 8월에 오다[戊子八月來]” 라고 하여 1828년 8월에 부임한 것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감영에서 각 읍지를 종합하여 성책(成冊)한 것은 1829년∼1831년 사이로 추정된다.
    『관동지』 전체의 내용 구성은 제1권 감영(監營)․원주, 제2권~4권 장릉사적(莊陵事蹟) 상․중․하, 제5권 영월․평창․정선, 제6권 횡성․홍천․춘천․낭천, 제7권 양구․인제․평강․철원․이천․안협, 제8권 회양․금성․김화, 제9권 삼척․평해․울진, 제10권~11권 강릉 상․하, 제12권 고성․양양․간성․통천․흡곡, 제14권~15권은 총록(總錄) 상․하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고을의 지리지 내용은 고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개는 선생안(先生案)․강역(彊域)․방리․건치연혁․군명․형승․관직․산천․성씨․풍속․능침․단묘․공해․제언․물산․교량․봉름․균세․대동․전세(田稅)․조적․결총․인물․진보․고적․사찰․누정․봉수․관애․목장․역원 등 30여개 항목으로 되어 있다.
    강원도 각 고을의 읍지를 모아 편찬한 『관동지』는 비록 소략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대의 다른 기록에서는 찾아 보기 어려운 19세기 초반 강원도와 각 고을의 현황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다른 사료에서 비록 강원도와 관련된 구체적 내용에 대한 산발적인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일정한 기준에 의해 기록된 읍지는 내용의 포괄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떠한 사료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문으로 작성된 조선시대의 사료를 완전하게 번역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관동지』의 경우는 각 고을에서 자체적으로 편찬하여 감영에 보낸 것이어서 통일성이 결여된 부분이 있으며, 각 관아의 속리(屬吏)들이 읍지를 필사하는 과정에 발생한 오자(誤字)나 탈자(脫字)가 허다하게 보이며 대항목, 소항목과 부가설명 혹은 주(註)에 해당하는 내용을 글자의 크기로 표시하다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각 군현별 읍지의 동일 항목 내용이 다르게 기재되거나 같은 고을의 같은 항목 내용 서술에서도 일관성이 없게 기재된 부분도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도 약자(略字)나 거의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조자(造字)의 사용, 그리고 원문 표기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 것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하여 원문을 제대로 판독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이러한 원문 기록상의 오류나 일관성 결여 등 여러 가지 문제는 『관동지』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가져왔으며, 이 때문에 『관동지』 편찬 이전 시기, 또는 이후 시기에 제작된 다른 지리지나 문집(文集) 등을 참고하여 잘못 필사된 부분을 바로잡아 번역을 해야했다. 번역상의 어려움은 그러한 원문의 오류에 의한 것 뿐만 아니라 어려운 용어나 이두가 허다하게 사용되어 이를 해득(解得)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료의 번역은 무엇보다 원문에 충실하게 직역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신념하에 철저한 직역을 추구하였으나 여러 사람이 번역에 참여하다 보니 완전하게 통일되지 못한 부분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또한 『관동지』에는 많은 양의 시문(詩文)이 들어 있는데, 충분히 문학성을 살려 번역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며, 아울러 제한된 시간내에 번역사업을 추진하다보니 다른 부분에서도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못해 본래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번역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머리숙여 바랄 뿐이다.
    『관동지』의 번역․출간에 즈음하여 우선 이러한 귀중한 사료가 번역될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김진선 지사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그간 이 사업을 계획․추진하여 오신 강원도청 관계자 여러분께도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바쁘신 가운데서도 번역, 교열, 감수를 맡아주신 여러 교수님과 원문입력, 교정 등 제반 사업의 추진을 위해 애쓴 고문서연구센터 연구원, 사료조사원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이 우리 고장 강원도에 대한 연구를 촉진하고 나아가 애향심을 고취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이를 활용한 더 많은 연구 성과의 축적을 약속드리며 서문으로 가름하고자 한다.


    역자 대표  손 승 철